제1장 두 의자
총을 든 사람들이 의사당에 들어올 때
“이제 제게 맡겨진 일을 마쳤으므로, 저는 이 거대한 행동의 무대에서 물러납니다.”
—조지 워싱턴, 대륙회의에 위임장을 반납하며 한 연설, 1783년 12월 23일
2020년 2월 9일, 엘살바도르의 수도 산살바도르.
군인들이 입법의회에 들어왔다.
제복을 입고 자동화기를 든 군인들이 통로와 의원석 사이에 섰다. 많은 의원은 자리에 나오지 않았다.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이 무장한 사람들을 대동하고 본회의장에 들어와 의장석으로 걸어가더니 앉았다.
대통령의 의자가 아니었다.
부켈레는 고개를 숙이고 몇 분 동안 기도했다. 일어난 뒤에는 방금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었으며, 하나님이 자신에게 인내하라고 말씀하셨다고 했다.1
헌법은 여전히 있었다. 대통령도 선거로 뽑혔고, 의원들도 그랬다. 의회가 공식적으로 폐지된 것도 아니었고, 법전에서 표결 절차가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본회의장에는 제도라는 가구가 하나도 빠짐없이 놓여 있었다.
다만 누군가 군대를 데려와 다른 사람의 자리에 앉았을 뿐이다.
시간을 230여 년 전으로 돌려 보자.
1783년 12월 23일 정오, 메릴랜드주 아나폴리스의 주의회 의사당 역시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번에 회의장으로 들어온 사람도 군대를 지휘하는 인물이었다. 조지 워싱턴은 얼마 전 대륙군을 이끌고 독립전쟁에서 승리했다. 곁에는 부관 두 명뿐이었다.
대륙회의 대표들은 앞쪽에 앉아 있었다. 방청객들은 위층 회랑을 가득 메웠고, 아래층에도 사람이 설 만한 곳이면 어디든 들어찼다. 워싱턴은 안내에 따라 회의 의장 맞은편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의장이 신호를 보내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워싱턴은 회의에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대표들은 모자를 벗어 답례했지만 그에게 고개를 숙이지는 않았다.
그런 다음 연설을 시작했다.
8년 반 전, 대륙회의는 그에게 대륙군을 맡겼다. 이제 영국군은 뉴욕에서 철수했고 전쟁도 끝났다. 워싱턴은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마쳤으므로 위임장을 회의에 돌려드린다고 말했다. 연설이 이어지면서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대표들과 방청객들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도 목격되었다. 연설을 마친 그는 품에서 위임장을 꺼내 대륙회의 의장 토머스 미플린에게 건넸다. 그리고 아나폴리스를 떠나 성탄절을 보내러 마운트버넌의 집으로 향했다.2
두 의자 사이에는 230여 년의 시간이 놓여 있다.
한 대통령은 무장한 사람들과 의회에 들어와 의장석에 앉았다. 한 총사령관은 부관 두 명만 데리고 회의장에 와서, 회의가 마련해 준 의자에서 일어나 민간 기구에 군권을 돌려주었다.
왜 한 사람은 자신이 앉아도 된다고 생각했고, 다른 한 사람은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노벨상은 보와 기둥을 측정했다
2024년 노벨 경제학상은 대런 애쓰모글루, 사이먼 존슨, 제임스 로빈슨에게 돌아갔다. 세 경제학자는 오랫동안 하나의 질문을 연구해 왔다. 어떤 나라는 번영하는데, 어떤 나라는 왜 오래도록 가난한가?
그들의 답은 한 단어로 줄일 수 있다. 제도다.
재산권이 안전한지, 평범한 사람도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지, 권력이 제약을 받는지에 따라 사람들의 투자와 혁신, 장기적인 협력 의지가 달라진다. 포용적인 정치·경제 제도는 더 많은 사람을 참여시키고 노력의 결실을 지켜 준다. 착취적인 제도는 기회와 성과를 소수의 손에 모아 준다.3
중요한 답이다. 법원과 의회, 계약과 예측 가능한 규칙이 없다면 아무리 훌륭한 도덕도 납품업체의 밀린 대금을 저절로 받아 주지는 못한다. 규칙이 다르면 같은 노력도 다른 결과로 이어진다.
이 설명에 따르면 두 의자의 차이도 어렵지 않게 답할 수 있을 듯하다. 제도가 달랐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빨리 끝날 문제는 아니다.
부켈레가 들어간 의회에도 헌법의 보호가 있었다. 엘살바도르의 1983년 헌법이 세운 체제 역시 대통령제 공화국이었다. 대통령, 의회, 법원, 그리고 입법·행정·사법의 분리까지. 제도의 설계도에는 익숙한 보와 기둥이 하나도 빠짐없이 그려져 있었다.
대통령의 연임 제한은 미국보다도 엄격했다. 미국에서는 대통령이 연임할 수 있다. 반면 2020년에 적용되던 엘살바도르 헌법은 5년 임기를 마친 대통령의 즉각적인 연임을 금지했다. 제154조는 더 명확했다. 임기가 끝나면 단 하루도 더 재임할 수 없었다.4
종이 위에는 언제 일어나야 하는지가 이미 적혀 있었다.
그런데 그때가 오기도 전에, 그는 다른 권력기관의 의자에 먼저 앉았다.
권력분립과 임기 제한은 모두 권력자가 공직을 차지하는 데 한계를 둔다. 워싱턴이 군권을 내려놓을 때는 훗날의 미국 연방헌법이 아직 쓰이지도 않았다. 아나폴리스의 대륙회의는 돈이 부족했고 독자적으로 세금을 거둘 수도 없었다. 군인들에게 약속한 봉급마저 오랫동안 밀려 있었다.
정식 헌법의 보호를 받는 회의장에서는 의원석 사이에 무장한 사람들이 서 있었다. 군인들의 봉급도 지급하지 못할 만큼 약한 다른 회의는 총사령관의 위임장을 돌려받았다.
제도경제학에는 이에 대한 답이 준비되어 있다. 성문헌법과 실제로 작동하는 제도는 같지 않다는 것이다. 종이에 권력분립이 적혀 있어도 현실에서는 여전히 착취적인 체제가 작동할 수 있다. 반면 재정이 빈약했던 대륙회의 뒤에는 백 년 넘게 이어진 식민지 자치의회와 보통법의 전통이 있었다.
건축업자인 나는 이 답을 따라 한 걸음 더 묻고 싶다. 헌법이 가로막는 사람이 바로 가장 강한 권력을 쥔 사람일 때, 무엇이 그 순간에도 헌법을 유효하게 만드는가?
권력을 제한하고, 재산권을 보호하고, 더 많은 사람을 참여시키는 제도는 하중을 받치는 보와 기둥이다. 장식품이 아니다. 구조를 따라 내려가는 기술자는 그 연결부까지 살펴야 한다. 실제로 하중이 실리면, 힘은 어느 접합부를 거쳐 땅으로 전달되는가?
조문은 종이에 쓰여 있다. 반면 권력에는 사무실과 예산, 경찰과 총이 있다.
총을 든 사람들이 이미 회의장에 들어왔다면, 제도를 지키게 할 제도는 누가 집행하는가?
첫 번째 의자: 앉는 데는 1초면 된다
부켈레가 의회에 승인을 요구한 것은 치안 계획에 쓸 약 1억 900만 달러의 차관이었다. 엘살바도르는 오랫동안 범죄와 갱단 문제에 시달렸다. 안전이 필요하다는 말은 꾸며 낸 것이 아니었다.
의회는 그의 요구대로 승인하지 않았다.
의회의 판단이 틀렸을 수도 있다. 꼭 필요한 계획을 지연시켰을 수도 있다. 60초 시험은 “아니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옳다고 판정하지 않는다. 살펴보는 것은 이것이다. 대통령의 주장이 타당하더라도 총으로 의회의 권한을 넘어설 수 있는가?
첫 번째 의자는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다음에 놓인 경계를 잰다. 두 번째 의자는 “나는 약속했다” 다음에 따르는 책임을 잰다.
공권력이 재산이라면 의회의 거절은 아랫사람이 주인을 모욕한 일이 된다. 군대는 그저 권력의 주인을 위해 문을 열러 온 셈이다. 그러나 공권력이 다른 이들을 대신해 맡은 것이라면, 의회의 거절은 대통령 권한의 경계를 이루는 일부다. 대통령은 비판하거나 설득할 수 있고, 제안을 고쳐 다시 제출할 수도 있다. 다음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판단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무력을 쥐고 있다는 이유로 다른 기관의 공권력까지 자기 주머니에 넣을 수는 없다.
기도는 그 경계를 바꾸지 못했다.
입으로 하나님을 말하면서 몸은 다른 사람의 의자에 앉아 있을 수 있다. 확인할 것은 그가 하나님을 입에 올렸는지가 아니다. 자신보다 높은 곳에 놓인 잣대가 있으며, 그 잣대가 자신도 잰다는 사실을 인정하는지다.
부켈레는 기도로 자신이 왜 인내하는지를 설명했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 앉을 권리가 생긴 것은 아니었다. 경건함이 절차를 대신할 수는 없다. 공사를 시작하기 전에 기도했다고 구조 검사를 면제받을 수 없는 것과 같다.
이후 엘살바도르 대법원 헌법재판부는 대통령에게 헌법에 어긋나거나 공화적 민주주의와 권력분립을 위태롭게 하는 목적으로 군대를 사용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제도는 반응했다. 법원은 경계를 그었다. 이제 그 경계가 무력을 쥔 사람을 멈춰 세울 수 있는지를 지켜볼 차례였다.
그날 부켈레는 의회를 해산하지 않았고 의장석을 영구히 차지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의회가 거절하자 군대를 데려왔다.
균열은 힘이 어디를 따라 흐르는지 보여 준다.
2021년 5월 1일, 새 의회가 출범했다. 대통령의 정당은 이제 확고한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의회는 임기 첫날 헌법재판부 재판관 다섯 명 전원과 검찰총장을 해임하는 안을 표결로 통과시켰다. 그해 9월, 새로 구성된 헌법재판부는 대통령이 곧바로 연임에 도전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2024년 2월, 부켈레는 압도적인 표차로 재선에 성공했다.5
재판관들은 교체되었고, 연임 제한은 재해석되었다. 이제 경계는 무력으로 넘어서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법의 형식 안에서도 다시 그어지기 시작했다.
앉는 데는 1초면 된다.
그 1초가 드러내는 것은 이것이다. 다른 권력이 자신을 가로막을 때, 권력자는 계속 설득하려 하는가, 아니면 그 권력을 넘어서는가?
두 번째 의자: 일어서기 전에
워싱턴이 아나폴리스에서 일어서기 전, 군대는 이미 그의 손이 닿을 만한 곳에 또 다른 의자를 밀어 놓았다.
전쟁이 끝나 가던 1783년 3월, 뉴욕주 뉴버그에 주둔한 장교들의 분노가 커지고 있었다. 여러 해 동안 봉급을 온전히 받지 못했고, 대륙회의가 약속한 처우도 불확실했다. 나라가 그들에게 싸워 달라고 할 때는 참아 달라고 했다. 승리가 다가오자, 그들은 나라가 그 인내에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으려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장교들에게 모임을 열자고 부추기는 익명의 편지가 군 안에 돌았다. 손에 쥔 무력으로 민간 정부가 약속을 이행하게 만들자는 암시가 담겨 있었다.6
정부는 실제로 그들에게 돈을 빚지고 있었다. “나는 약속했다”라는 말은 대륙회의 쪽에서 먼저 무게를 잃었다.
바로 이런 순간에 권력은 가장 쉽게 이름을 바꾼다. 군대는 빚을 받는 일을 구국이라고 부르고, 억울함을 권한의 근거로 바꿀 수 있다. 장군은 부하들의 분노를 자신의 통치 자격으로 만들 수 있다.
워싱턴은 봉급이 밀렸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장교들의 분노를 불충이라고 몰아세우지도 않았다. 그가 반대한 것은 다른 일이었다. 군대가 쥔 힘으로 민간 정부를 대신하는 일이었다.
그는 장교들의 모임에 찾아와, 막 얻은 자유를 한순간에 무너뜨릴 행동은 하지 말라고 호소했다. 연설만으로 분위기가 곧바로 바뀌지는 않았다. 그러다 대륙회의 대표가 보낸 편지를 꺼내고 안경을 집어 들었다. 그가 안경을 쓰는 모습을 처음 보는 장교도 많았다. 그는 양해를 구하며, 나라를 위해 일하다 머리가 세었을 뿐 아니라 눈까지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말했다.
방 안의 힘의 균형이 달라졌다. 앞에 선 사람은 의회를 대신해 또 기다려 달라고 요구하는 이만이 아니었다. 그들과 함께 대가를 치러 온 총사령관이었다.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었다. 군사적 압박으로 번질 수 있었던 모임은 결국 워싱턴이 의회에 호소하는 길을 지지했다.
정부가 군대에 진 돈은 여전히 받아 내야 했다. 그러나 군인들의 손에 든 총이 그들에게 나라의 소유권까지 주는 것은 아니었다.
이후 의회는 당초 약속한 평생 반액 봉급을 5년 치 전액 봉급으로 바꾸어 지급하기로 했다.7 실제 지급까지는 여러 해가 걸렸고, 지급을 위해 발행한 증서는 한때 가치가 크게 떨어졌다. 빚을 인정했다고 지연의 대가가 사라지는 것도, 돈을 갚은 셈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약속이 기록으로 남아 있는 한 정부는 계속 답해야 했다. 밀린 돈을 어떻게 갚을 것인가, 언제 갚을 것인가? 군인들이 권력을 빼앗지 않았다고 해서 정부가 의무를 다한 것은 아니었다.
9개월 뒤, 워싱턴은 아나폴리스에서 위임장을 반납했다. 갑자기 보여 준 멋진 몸짓이 아니었다. 이미 선택한 길의 마지막 행동이었다. 군대는 자기 빚을 받아 내기 위한 정부가 되지 않았고, 장군도 나라의 주인이 되지 않았다.
위임장은 저절로 장군의 품에서 기어 나오지 않는다.
제약이 아직 벽이 되기 전
워싱턴에게도 실제 제약이 있었다.
열세 주가 군사 통치를 순순히 받아들일 리 없었다. 장교단의 뜻도 하나가 아니었다. 돈 없는 군대가 드넓은 새 나라를 오래 다스리기도 어려웠다. 지역 정치와 공화주의 전통, 사회적 평판은 모두 권력을 빼앗는 데 드는 비용을 높였다. 위임장을 반납하면 자발적으로 권력을 내려놓았다는 명예도 얻을 수 있었다. 후세의 평가를 중시하는 사람이라면 절제 또한 평판을 위한 투자일 수 있다.
훗날 그는 공직으로 돌아와 제헌회의를 주재하고 두 차례 대통령을 지냈다. 그러나 그 역할에는 새로운 권한 부여가 필요했다. 전쟁의 승리가 미리 그 권한을 발급해 줄 수는 없었다.
제도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선을 넘는 대가를 높이고 반대의 힘을 조직해서, 나라가 매번 성인(聖人)이 나타나기만 기다리지 않아도 되게 한다.
그렇다고 이런 제약이 월권을 불가능하게 만든 것은 아니다. 평판은 절제에 보상할 수도 있지만, 다른 이야기에 보상할 수도 있다. 비상시국에는 비상한 지도자가 필요하며, 나라가 정말 안전해진 다음에 권력 이양을 논의하자는 이야기다.
계속 차지하고 있어야 할 고상한 이유는 언제든 찾아낼 수 있다.
워싱턴에게는 제약도 있었고 선택지도 있었다. 설명해야 할 것은 제약이 아직 벽처럼 단단해지기 전인데도 왜 그가 그것을 벽으로 받아들였느냐는 점이다.
종이가 장군을 제압할 수는 없다. 규칙은 실제 사람이 집행해야 한다. 가장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 순간에도 권력자는 제약을 받아들이는가? 그가 거부하면 다른 사람들은 그 제약을 근거로 그를 멈춰 세울 수 있는가?
노벨상을 받은 연구는 어떤 보와 기둥이 권력을 더 잘 제한하는지 알려 준다.
두 의자는 우리를 접합부로 데려간다. 왜 권력자는 그 보와 기둥을 자기 가구라고 선언할 수 없는가?
열쇠는 집문서가 아니다
나는 건축업에 종사한다. 건물주가 현장 책임자에게 공사장 열쇠와 예산, 공사를 지휘할 권한을 준다고 해서 건물을 주는 것은 아니다.
현장 책임자는 여러 방에 들어가고 많은 사람에게 일을 맡길 수 있다. 문을 열 수 있다고 그 방이 자기 것은 아니다. 지시를 내릴 수 있다고 일하는 사람들이 자기 소유가 되는 것도 아니다. 권한은 맡은 일과 함께 주어지고, 설계도와 업무 범위, 검사와 일정의 제약을 받는다. 공사가 끝나면 열쇠를 돌려주어야 한다.
공권력도 마찬가지다.
권력을 맡았다는 것은 자신이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에게 권한을 줄 수 없다는 뜻이다. 권한은 특정한 직무를 위해 존재하며, 그 범위와 기간은 함께 정한 규칙의 제약을 받는다. 위임이 끝나면 권력도 돌려주어야 한다. 재임 중에 한 일은 그 뒤에도 검토와 질문의 대상이 된다.
이것이 두 의자가 함께 비추는 제1원리다.
공권력은 맡겨진 것이지 재산이 아니다. 승리가 주는 것은 열쇠이지 집문서가 아니다.
제도는 왜 번영에 영향을 미칠까? 오늘 누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정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장기적인 협력은 내일에 걸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리 하나, 연구실 하나, 새로운 기술 하나를 이번 정부가 승인하고 다음 정부가 검사한 뒤, 그다음 정부가 잔금을 지급할 수도 있다.
권력이 바뀔 때마다 어제의 약속을 다시 쓸 수 있다면, 은행은 담보를 더 요구하고 납품업체는 선금을 더 요구할 것이다. 기업은 연구개발에 쓸 돈으로 인맥을 찾을 것이다. 모두가 한꺼번에 나빠질 필요는 없다. 각자 조금씩 더 조심하기만 해도 사회 전체가 경계하고 대비하는 비용을 함께 치르게 된다.
낯선 사람들과 협력하고 여러 차례 권력 이양을 거쳐야 한다면, 공적인 약속은 권력자가 바뀔 때마다 처음부터 새로 시작할 수 없다. 오래된 약속이 계속 이행될 때 뒤에 오는 사람들도 앞선 이행 기록을 근거로 새롭게 맡길 수 있다. 신용이 이렇게 이어져 쓰일 때 사람들은 돈과 시간을 미래에 더 기꺼이 투자한다.
제도는 이 신용이 한 사람의 품성에만 달려 있지 않게 한다. 그러나 제도가 가장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 순간을 견디려면, 자신이 제도의 주인이 아님을 인정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보와 기둥은 중요하다.
하지만 허공에 매달려 있을 수는 없다. 보와 기둥은 모두 갖추었는데 아래에서 그 하중을 받아 줄 것이 없다면, 그 건물에는 뿌리가 없다. 지진이 오기 전까지는 다른 건물과 똑같아 보인다.
1776년 독립선언부터 2026년까지, 미국은 250년을 걸어왔다. 대통령의 의자에는 많은 사람이 앉았지만 왕좌는 줄곧 비어 있었다. 이 공화국은 다시 왕을 세우지 않았다.
똑같이 권력분립과 임기 제한을 적어 둔 또 다른 공화국에서는 2020년 대통령이 군대를 데리고 의회에 들어와 자기 것이 아닌 자리에 앉았다. 조문이 먼저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경계를 먼저 넘었다.
조문과 기관의 이름은 베낄 수 있다. 그러나 가로막혔을 때도 자신에게 선을 넘을 권리가 없음을 인정하는 권력자, 그리고 이를 근거로 그를 멈춰 세우는 다른 사람들의 힘은 베껴 써서 얻을 수 없다.
기둥은 베낄 수 있어도 뿌리는 베낄 수 없다.
위임장이 탁자로 돌아오다
1783년 12월 23일로 돌아가 보자.
워싱턴이 품에서 위임장을 꺼내 대륙회의 의장에게 건넨다. 한 사람은 그 종이 한 장으로 군대를 움직이고 장교를 임명하며 전쟁 중의 생사를 결정했다. 이제 바로 그 종이가 그의 손을 떠난다.
회의가 그의 손에서 군권을 빼앗은 것이 아니다.
그가 돌려주었다.
워싱턴은 사임 연설에서 나라의 이익을 “전능하신 하나님의 보호에” 맡겼다.2 두 사람 모두 하나님을 말한다. 한 사람은 앉았고, 다른 사람은 일어났다. 하나님을 언급했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사람이 인정하는 잣대가 자기 자신도 재는지를 보아야 한다.
워싱턴은 군사력을 쥐고 있었지만 그것이 자기 소유가 아님을 인정했다.
부켈레가 앉는 행동은 이렇게 말했다. 경계를 넘을 힘이 있다면 이 자리는 내가 써도 된다.
워싱턴이 일어서는 행동은 이렇게 말했다. 계속 차지할 힘이 있더라도 이 권력은 내 재산이 아니다.
한 사람은 차지했다.
다른 사람은 돌려주었다.
두 의자는 제도 속 가장 깊은 소유권의 경계를 드러낸다. 권력자는 권력을 사용하는 사람이지 소유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라는 선거 승리자에게 상으로 주는 집이 아니다.
공직자가 받는 것은 열쇠뿐이다.
그런데 공권력이 맡겨진 것이라면, 궁극적으로 누구에게 책임을 지는가? 국민도, 의회도, 법도 권한을 부여할 수 있다. 그리고 모두 잘못될 수 있다. 종이에 적힌 법 자체가 경계를 넘을 때, 그것을 멈춰 세울 더 높은 잣대가 있는가?
의자가 미국 연방대법원의 재판관석으로 바뀌어도 이 질문은 남는다.
군인은 법정에 들어오지 않는다. 판결은 법의 언어로 정식 작성될 것이다.
그 판결이 결정하려는 것은 한 사람을 ‘모든 사람’에서 지워도 되는가 하는 문제다.
주석과 출처
1. 휴먼라이츠워치, “President Bukele, Brute Force Is Not the Way Forward for El Salvador”, 2020년 2월 14일.
2. 조지 워싱턴, 1783년 12월 23일 군 지휘권 위임장을 반납하며 한 연설과 의식 기록, 메릴랜드주 문서보관소. John C. Fitzpatrick 편, The Writings of George Washington, 제27권, 284–285쪽. 마운트버넌의 “Resignation of Military Commission”도 참조.
3. 스웨덴 왕립과학원, 2024년 경제학상 보도자료, 2024년 10월 14일.
4. 엘살바도르 공화국 헌법(1983년 제정, 2020년 당시 적용 조항), 제85–88조, 제150조, 제152조 제1항, 제154조, 제248조. 미국 헌법 수정 제22조.
5. 휴먼라이츠워치, World Report 2022: El Salvador 및 World Report 2025: El Salvador.
6. 마운트버넌, “Newburgh Address”, 그리고 워싱턴이 1783년 3월 15일 장교들에게 한 연설. 안경에 관한 발언은 데이비드 코브와 새뮤얼 쇼의 현장 목격 기록에 나온다.
7. 대륙회의 1783년 3월 22일 결의. 미국 의회도서관 소장 George Washington Papers: Varick Transcripts, 제7권.